대원사 계곡

 지리산 천왕봉 동북쪽 유평 계곡에 위치한 대원사는 수덕사의 견성암과 석남사와 함께 우리나라 3대 비구니 참선수행 도량으로 신라 진흥왕 때 연기조사가 창건하여 그 후 여러 차례 화재로 부분적으로 보수하였다가 여˚순 사건 때 빨치산 토벌로 모두 불타서 1955년 법일스님에 의해 재건되었다고 한다.

  대원사 계곡은 깊고 울창한 수림과 반석이 어우러져 신비로움을 그대로 보여주는 아름다운 계곡인데 원래는 마을 이름을 떼와서 유평 계곡이라 불렀으나 대원사 비구니 사찰의 깨끗한 이미지가 더해져 지금은 대원사 계곡으로 불리고 있다.

  밤밭골에서 치밭목 산장과 하봉, 중봉을 거쳐 천왕봉으로 오르는 유평리 코스는 약 5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된다. 대원사 계곡물은 지리산 천왕봉에서 중봉과 하봉을 거쳐 쑥밭재 새재 왕등재 밤머리재 웅석봉으로 이어지는 산자락 곳곳에서 발원하여 12km를 이르는 골짜기를 따라 흘러내린다. 신밭골과 조개골
밤밭골로 모여든 계류는 새재와 외곡마을을 지나면서 수량이 많아지고, 비구니 도량인 대원사가 있는 산청군 삼장면 유평리에서부터 큰 물을 이룬다.

  계곡에는 선녀탕, 옥녀탕 등의 용소등과 소(沼)와 세신대, 세심대가 있으며 사시사철 밤낮으로 물에 씼긴 바위들이 눈이 부실 정도로 휘고 깨끗하다. 여름이면 12km나 이어지는 대원사 계곡은 여름철이면 수많은 인파가 찾아든다. 아름다운 자연 계곡은 휴가를 보내기에 더 없이 아름다운 곳이다.

  중산리계곡을 이루는 지류로 순두류가 있다. 중산리 매표소에서 찻길따라 이어진 곳이 순두류다. 지리산의 다른 호칭인 두류산에서 나온 말인 순두류는 글자 그대로 두류산이 순하게 흘러 평지를 이뤘다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순두류 계곡이 시작되는 평원에는 한때 화전민이 살았다고 하는데 지금은 경남자연학습원이 있다. 학습원이 있어 순두류까지 차로도 갈 수 있지만 행락 차량은 매표소에서 통제한다.

  천왕봉과 중봉 사이에서 발원한 계류가 용추폭포를 거치면서 수량을 더해 써리봉에서 흘러오는 계곡물과 만나면서부터는 우렁찬 물소리와 함께 수려한 경관이 펼쳐진다. 10여 년 전만 해도 너럭바위마다 촛농이 마를 날이 없을 정도로 치성드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빼어난 계곡에다 천왕봉에서 흘러내린 산 기운이 순두류에 머물고 있다 하여 기도 효험이 높다는 것이 그들의 믿음이었다. 실제 순두류가 좋은 기운을 머금은 땅이었는지 한때는 인삼 재배지로 각광받기도 했으나 빨치산의 등장으로 오래가지 못하고 요즘은 산삼캐는 발길 뿐이란다.

  그러나 법천골과 순두류의 계곡을 즐기려면 산행채비를 하고 떠나야만 한다는 아쉬움이 있다. 가족끼리 자연 속에서 하루 머물다 떠난다는 계획으로 중산리계곡을 찾는다면 덕산에서 중산리에 이르는 도로변 어느 한 곳에 오붓이 앉아 흐르는 물결에 시름을 떠나보내며 모처럼 가족간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더 좋다.


중산리 계곡

 지리산의 최고봉인 천왕봉에서 비롯된 계곡이 중산리계곡이다. 중산리(中山里)란 지명에서 알 수 있듯이 지리산의 중간쯤에 위치하고 있어 일찍부터 지리산 등정의 출발지로 이용됐다. 5백여년 전 말(馬)과 하인, 제자들을 대동하고 지리산을 올랐다던 김종직(金宗直)을 비롯하여 김일손(金馹孫), 조식(曺植), 이륙(李陸)과 같은 학자들도 중산리에서 천왕봉에 올랐다고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예부터 많은 사람들이 찾아드는 계곡답게, 또 남강을 거쳐 낙동강으로 이어지는 덕천강의 발원지답게 계곡미도 빼어나다. 공원매표소를 지나 오늘날 지리산 등산로를 개척한 허만수(許萬壽)를 기념해 세워놓은 비석 옆으로 오르면 천왕봉 등산로이자 중산리계곡을 이루는 주요 골짜기인 법천골로 들어가게 된다.

  해발 1,750m에 위치해 있는 장터목 바로 아래에 있는 산희샘에서 시작된 법천계곡은 법천폭포, 유암폭포, 무명폭포를 비롯하여 소(沼)와 담(潭)이 곳곳에 있어 교향악 같은 우람한 소리와 실내악처럼 고요한 물소리를 들을 수 있다.

  산청쪽인 중산리와 함양쪽인 백무동에서 각각 9km 거리에 위치, 양쪽 모두 무거운 등짐을 지고 올랐을 때 어느쪽도 손해봄이 없어 장터목을 삼았는지 아니면 산청에서는 법천계곡, 함양에서는 한신계곡으로 해서 오름에 따라 여름에는 시원하고 가을에는 계곡을 가득 메우는 단풍이 좋아서였는지 모를 일이다.


거림 계곡

 거림 계곡은 지리산 10경 중 네 번째인 철쭉으로 유명한 세석평전에서 시작되는 거림골을 본류로 지리산 주능선 상에 위치한 연하봉과 촛대봉에서 비롯되는 도장골, 세석평원에서 삼신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상에 있는 한벗샘에서 발원한 자빠진골 등의 지류가 모여 커다란 계곡을 이룬다.

  계곡의 본류만도 60여 리에 이르는 거림골은 철쭉이 꽃을 피우는 봄이면 등산객들의 발걸음이 계곡의 물 흐르는 소리가 묻힐 정도로 사람들이 많이 몰린다. 이곳에 가려면 산청군 시천면 덕산에서 중산리 방면으로 가다 곡점마을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들어서면 된다. 산꾼들은 마을 뒷산처럼 밋밋한 거림골 보다는 남부능선으로 오르는 자빠진골이나 촛대봉으로 오르는 도장골을 찾는다. ‘자빠진 골’혹은 ‘엎어진 뜰’로 부르는 남부 능선 상의 계곡은 이름 그대로 산이 자빠진 듯, 엎어진 듯 완만한 경사를 보여준다. 그러나 계곡의 수려함은 어느 골짜기 못지않다.

  골짜기가 자빠지고 엎어지면서 엉겁결에 파인 듯 원시성이 돋보이기 때문이다. 단지 아쉬움이라면 일반인들의 접근이 쉽지 않다는 점인데 계곡으로 가려면 거림마을 매표소를 지나 한동안 걸어야 하는 것은 물론 지리산 등산로에도 나와 있지 않을 정도로 길이 감추어져 있으므로 경험자와 동행하는 것이 안전하다.

 반면 도장골은 와룡폭포까지 등산로가 뚜렷해 찾기는 쉽다. 도장골은 거림마을 매표소를 지나 조그만 암자 뒤로 돌아들어 가면 있다. 계곡에 들어서면 처음 반기는 것이 밀금폭포다. 규모 면에서 웅장할 뿐만 아니라 거대한 물살이 물보라를 일으키며 내려꽂히는 모습은 보는 이를 압도한다. 또 폭포 위의 용소 역시 실제 용이 살았을 것만 같을 정도로 넓고 깊으며 주변에는 수백 명쯤 앉을 수 있는 반석이 깔려 있어 휴식처로서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계곡 위쪽으로도 윗용소와 와룡폭포 등의 아름다운 경치를 보여주는 곳이 있으나 길이 험하므로 등산이 아닌 휴식차 왔다면 용소 주변에서 넉넉한 시간을 가지는 것이 좋다. 윗용소로 올라가면 전설적인 빨치산으로 불리는 이현상의 남부군 지휘소와 후생병원의 흔적을 볼 수 있기도 하다. 그만큼 도장골이 은밀하고 깊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물이기라도 하듯이 늦가을 낙엽이 모두 지고 나면 잡목들 사이로 토굴식 집과 돌담의 흔적이 빠끔히 보인다.

  피서철이 아니라 하더라도 도회지의 일상적인 삶에 지쳐 대자연의 숨소리를 들으며 조용히 휴식을 취하고 싶다는 심정으로 떠난다면 도장골의 고요함과 아름다움은 삶의 지혜를 줄 것이다.

  그렇다고 거림 계곡의 본류인 거림골의 경치가 빼어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그만큼 지류인 자빠진골과 도장골의 경관이 좋다 보니 지리산의 어느 계곡에 비해 빠짐이 없으면서도 상대적으로 피해를 보는 셈이다. 거림(巨林)이라는 이름에서처럼 예부터 아름드리나무가 계곡을 빼곡히 메우고 있어 일찍이 개발되어 일제강점기에는 군수용이란 이름아래 거목들이 베어져 나갔고, 해방 후에는 혼란기를 틈타 너도나도 베어 날라 한때는 벌거숭이가 되었으나 이제는 옛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신라 시대 화랑들의 수련 터라고 일컫는 세석평원, 지리산에 최초로 삶의 전설을 남긴 호야(乎也)와 연진(連眞)의 자식 바람이 호랑이의 해코지로 물거품이 되고 둘은 호야봉과 초대봉에 돌이 되어버린 애틋함의 출발지 음양수샘과 세석의 철쭉 그리고 잔돌(細石) 또 소설가 문수태의 작품'철쭉제'에서 보는 양반과 상놈의 계급이 무너지고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온 이데올로기의 대립이 세석의 철쭉꽃 아래서 허무하게 끝을 맺는 것처럼 세석평전에 이르는 거림 계곡은 사색의 계곡이라 할 만하다.